나의 고향은 부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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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나의 고향은 부안입니다.

홍성모화백 -고향작품씨리즈 107 - 석포리 대소

나의 고향은 부안입니다.
오랜만에 어제 강원도 영월에 갈려다가 갑자기 고향 부안에 내려 왔다. 바로 변산 석포리에 위치한 대소마을을 찾기 위해서다. 대소마을 가는 길은 끝을 알 수 없는 산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의 장소였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고 그리 높지 않은 산(변산 해발509m)에 이렇게 깊은 골짜기가 있을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 아직도 몇 가구 살고 있었고, 그 옛날에도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넓은 평야같은 분지로 되여 있었다. 깊은 골짜기에 이렇게 넓은 땅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감탄의 연속이였다.1970년대 전후해서 부안댐이 생기고 상수원 보호지구로 지정되면서 화전민들이 철거할 때 이들 중 일부는 지리산 청학동으로 그대로 옮겨갔다고 전한다. 아마도 이곳이 신선대 옥녀봉아래 수십 가구가 살던 십승지가 아닐까 한다. 서울에서 살다가 7년전에 이곳 대소에 터를 잡고 귀향하신 유태환 형님께서 4륜구동차가 아니면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곳에 우리 일행을 안내해줬다. 몇년전에 두어번 다녀가면서 베롱나무를 그리고 싶어 안달한 나였다. 드디어 어제 그 꿈을 이룬것이다. 해녀이신 형님내외의 손수 만들어주신 최고의 음식 해파리냉채까지 융숭한 대접을 받고 스케치를 했다. 비록 갑자기 내린 소나기때문에 그리다 말았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이곳은 밖에서 볼 때는 이렇게 포근하고 아늑한 곳이 있을 줄 꿈에도 모를 정도였다. 모든 일행이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향 부안의 십승지가 역시 그냥 된 건 아니었다. 정말 예사롭지 않다. 천혜의 명당이였다. 저의 대소 스케치에 관한 글을 읽고 페친이신 강미구선생님께서 옛 생각이 떠올라 글을 올려 주셨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때 대소는 꽤 큰동네였습니다.대소에서 바라보면 산중턱 신선봉아래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꾼이라 불렀고 상투틀고 머리를 따고 약초를 재배해 대소를 거쳐 석포 우리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때 대소에 제 기억으로는 14가구정도 살았고 학생들도 10여명이 넘었습니다.학생들은 매일 산을 넘어 석포국민학교에 다녔고 도꾼 자녀들도 우리와 함께 학교를 다녔습니다. 폭우가내리면 학교를 못오는경우도 많았지요. 그러다 1990년 김영삼대통령때 부안댐이 건설되고 대소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보상받고 하나둘 떠났습니다 그 땅은 투기바람과 더불어 대부분의 땅이 그당시부안군청 다니는 분들과 아는 지인들이 이 땅을 샀다가 대부분 외지사람들한테 넘어갔습니다. 신선대 사시는분들은 지리산 청학동으로 이주를하고 대소주민들도 거의 떠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개발을 전혀 할수 없었습니다.원주민였던 친구 동생이 대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모노레일을 깔았었고 국립공원의 반대로 트랙터를 가지고 올라가다가 큰 사고도 당했지요. 결국 쌍발헬기로 트랙터 포크레인등을 대소로 올렸고 그 포크레인으로 대소부터 길을 내고 내려온게 지금의 사륜구동차가 오르내리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한명 두명 들어와 살던것이 지금은 4가구정도 산다고 하더군요.그 안에 넓은 분지가 있다는게 놀랍고 한때는 그곳에 댐을 막아 직소폭포에 물이 마르지않고 부안댐 상수원에도 도움을 주는쪽으로 이야기 되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제가 알기로는 신선봉이 해발 507미터이고 대소는 그 중간정도 되는걸로 압니다 홍화백 덕분에 옛 추억에 젖어 장문의 댓글을 써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따뜻한 글을 남겨줘 올려본다.아름다운 대소 분지의 풍경이 아메리카노 향기처럼 그리운 하루이다. 21년 8월19일에 스케치 한 작품 완성하여 올려본다. (홍성모화백 칼럼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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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를 훔친 두 남자/ 김종숙
그는달을 보며 글을 짓는다
대소마을 깊은 산중 날벌레떼 모은 외등아래
발걸음 닿지 않는 배롱나무 사이로
반딧불이를 불러 놓고
화답없는 쓸쓸한 감정을 토해내며
밤마다 푸른 불덩이 되어 몸부림친다
차라리 그 꽃을 질투하는 것이다
그분은 꽃을 보면 담아온다
그림을 그리든지 사진을 찍든지
절대 꺾는 법이 없다
고향은 금세 내 창가에 걸터 앉아있기도 하고
뚝뚝 떨어져 흩어진 꽃잎을 주워 꽂게도 한다
민첩한 화법과 색채와 선으로
다시 화선지 위에 살아 피어나게 하는 것이다
보이는 곳 모두 화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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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화백 -고향작품씨리즈 107 - 석포리 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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