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공이산(愚公移山)을 이룩한 “미라클보이스앙상블”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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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이룩한 “미라클보이스앙상블” Ⅱ

*9명의 발달장애인이 사건을 만들다.
*국내는 물론, 세계최초의 발달장애인 성악공연단.
*금년10월 31일 미국 카네기홀 무대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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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씨음악대학에 입학하다


 기자~말씀만 들어도 그간의 여러 상황들이 그려집니다. 발달장애 청년이 대학진학을 하여음악학과를 졸업하고편입하여 사회복지학까지 이수했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런 초유의 결과가 있기까지는 어머니이신 실장님의 노고가 9할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어떻습니까?

 

 실장~우리 정 단장에 관한 모든 사연을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발달장애 아동들은 럭비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믿거니 하고 있다간 무슨 일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릅니다. 때론, 폭력적이거나 갑자기 도로 가운데로 뛰어드는 등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보호자는 매시간 잔뜩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 정도입니다.

또한, 설상가상으로 자폐증세까지 보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학업을 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일단 교육현장에서의 통제가 어렵다보니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솔직히,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도, 한없이 천진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런 일들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괴롭고 힘들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계기가 되는 일들이 하나둘씩 느끼거나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연재의 학습 진도나, 행동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암튼 좁은 도자기 가게에서, 좌충우돌하는 것처럼 늘, 불안감을 느끼게 했던 우리 연재의 행동들에서, 무언가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연재는, 여러 문제 행동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연재가 잘하는 것은 그림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로 상을 제법 타오더군요. 집에서 방문을 닫고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비디오를 보고 즐기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제법 생동감 있게 그려내더군요.

그러나 점점 혼자 방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것마저도 제한을 하게 되면, 엄마인 저는 단 한 시간의 여유도 없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연재가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가 저의 유일한 자유시간이기도 해서 좋은데, 연재는 우리가 떠난 훗날에 험한 세상살이를 해 나가려면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웃고, 울면서 사회생활에서 생기는 희로애락들을 몸소 체험해가며 삶을 배워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들어서 연재가 사용하던 미술도구를 다 치우고 교회 찬양대에 세웠더니 입만 뻥긋거리며 부르는 시늉만 했습니다.

연재는 자폐아가 보이는 서번트증후군의 증상이 없는 아이입니다. 제가 연재에게 성악을 가르쳐 보려고 했던 것은, 연재의 사회성을 키워보겠다는 일념에서입니다. 그리고 늘 하는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 연재가 꾸준히 노래하며 많은 대중을 만나고, 그러면서 감동을 받고, 또한, 그 안에서 사회를 배우게 하소서가 천편일률적이며 한결같은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그리고 연재 엄마로 살면서 딱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다면, 나 홀로 방에서 비디오만 보고 그림만 그리며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치던 아이를 방에서 이끌어낸 것. 그리고 연재 자신을 표현하는 노래를 만나게 도와준 것이 그나마 가장 큰 공적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현재의 우리 연재 단장님은요, 사회성이 점점 진화되어 이제는 결혼해서 독립하겠다고 인터넷으로 신혼집을 살펴보고 있답니다. 대한민국 아파트 시장조사는 혼자 다 한 것 처럼요. (웃음)

이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연재에게서 가능성과 작은 희망의 불꽃이 보인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확신에 찬 그 어떤 것은 아닐지 몰라도 아득하게나마 긴 암흑의 터널 저 끝에 빛이 보이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지치고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남편조차도 그간, 늘상 지쳐 보였던 당신 눈빛이 번쩍번쩍 총기가 생기고 확 달라졌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몸과 마음에 서서히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매일이 기쁘고 좋았습니다.

그동안 천근만근으로 느껴지던 마음의 짐들조차도 솜털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소 과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마치, 시시포스의 바위를 절벽 위에 올려놓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병증들은 헬렌켈러에게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헬렌도 19개월 전에는 정상아로 태어났는데 이후, 뇌척수수막염에 의해서 시력, 청력, 언어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녀도, 6세 이전에는 폭력적이고 상대를 할퀴고 자신의 살을 잡아 뜯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부모님의 노력으로 농, 맹아학교에 입교하여 앤 설리반 선생을 만나게 되었고 이분을 통해서 점차 학습 진도나 거칠었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후, 상급학교 교과 과정을 마치고 후일에는 작가, 교육가, 사회운동가(장애인 인권운동)로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연재 단장님, “하루라도 빨리 장가가서 예쁜 아내와 귀요미 아가들을 낳아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십니다.

 

기자~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실장님이 크게 보이는군요. 앞서, 실장님께서 말씀 주신대로, 정연재 단장과 연관된 숨은 사연을 모두 알아보려면 장편소설 연재를 통해서나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잔가지는 쳐내고, 직진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정연재 단장이, 사회복지학을 부전공한 일이나, 이와 관련한 장애인단체 센터장을 역임한 일, 나아가서 미라클보이스앙상블단장까지 맡는 등, 여러 가지 주요 보직을 수임하게 되었는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실장~ (웃음)비장애인인 일반인들의 생각은, 현재, 우리 연재의 역할과 기능들이 기적처럼 보이거나, 선택된 계층의 특별한 경우가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모두(冒頭)에 기자님께서 언급하신 그대로, 이 인터뷰의 본래 취지가, 지적발달이 더딘 장애아동이라 할지라도, 국가사회나 가정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교육을 한다면, 현대 사회의 주류로써 손색없이 건재할 수 있다는 본보기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연재의 성장한 모습들이 목표의 최후 종착이 아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첫 삽을 뜬다는 시발(始發)의 시그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 기자님께서 물어 주신대로, 비록 부족하긴 해도 저는 발달장애아를 둔 엄마로써의 제 본분을 나름 다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인 저로서는,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 연재와 세상 끝날 때까지 어려움 속에서 걱정하면서 살기는 싫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하루만 최선을 다하자고 생각하면 내일이 또 오더군요. 그럼 내일도 하루만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저에게는 내일이라는 설렘이 없어진지 오래였습니다. 기다림이란 막연한 기대감일 텐데도, 당시의 저에게는 기다림보다는, 당면한 지금의 숙제들을 해결하기에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그로 인한 효과나 결과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아무튼 비록 작지만, 제게 주어진 달란트나 에너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모두 쏟아 부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여력이 있는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 아직까지는 저희들을 굽어 살피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웃음)

우리 연재가 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일도 기적에 가까운 일일 수 있겠습니다. 이는, 모두 해당학과 지도 교수님들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교육지도 덕분입니다.장애인 전형으로 간신히 들어갔지만, , 장학금 혜택까지 주신 학교 측의 배려가 있어서 6년간의 학업을 마칠 수가 있었고, 학위까지 받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실로, 넘치게 감사한 일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간, 우리 연재의 학업을 위해 애쓰셨던 학습 도우미 친구들이나, 30%의 등록금을 지원해주시는 등의, 지속적인 도움을 주신 학교 당국에 우리 가족 모두의 마음을 모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덕분에 저도, 연재의 학교 교육 총20년 동안 통학을 항상 같이했기에 졸업도 같이했네요.

 

윤혁진교수와 함께 미라클보이스앙상블 공연단체의 산파역할을 한 정연재단장의 어머니 이은형씨.대한사회복지신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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